오랜만에 주말에 카페에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을 여유가 생겼다. (평소 주말에는 헬스장 말고는 밖에 잘 안 나가니...)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고 했지만, 소설 속 세계는 현실의 다양한 문제(혹은 이슈)와 연결되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몇 가지 챕터는 반드시 블로그에 정리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너를 위해서
"당신의 아이입니다. 감회가 어떠세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유전자로 태아가 무사히 착상된 것을요"
"이게 다 당신의 아이를 위해서예요. 저 아이를 보세요. 살아 숨 쉬는 이 작은 생명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가 고개를 돌렸다. 스크린에는 작은 쌀알뿐이었다.
이 챕터를 읽고 단숨에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인공수정관을 통한 인간해방이라는 키워드가 생각났다. 물론 이 챕터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아버지'가 주인공이지만(파이어스톤은 실질적으로 여성의 성역할 해방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해방이라는 면에서 유독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새로 태어나는 생명에 대해 도덕적으로 강력한 권리를 부여한다.
생명의 탄생은 신비롭고, 그 자체만으로도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이라는 가치에 불평등한 위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의 탄생이 아무리 보호받아야 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생명을 밟아가며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
희생이라는 말은 포장에 불과할 뿐・・・・・・ 사실상 피할 수 없는 함정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어떤 물질의 사랑』
"너는 민혁이를 사랑해서 이제 남자가 될 거야"
"어떻게 되냐니? 그냥 남자의 호르몬을 가지는 거지. 변하는 건 없어. 그냥 그렇다는 걸 네가 알아둬야 앞으로 네 몸의 변화에 놀라지 않겠지."
"보통 사람이 헤어질 때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하는지 생각하고 있었어."
"할 수도 있지. 그걸 왜 고민해?"
엄마한테는 어떤 일이든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건 그냥 사랑인 척 썼을 뿐이에요. 어떤 사랑은 우주를 가로지르기도 하는 걸요."
"눈도, 코도, 귀도 다 다르잖아요. 손가락 크기도 다르고 머리카락이 나는 방향도, 심어진 눈썹의 개수도 다르잖아요. 지구 행성의 개체들은 사물을 단순화해서 분류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 지구에서 같은 생명체는 단 한 개체도 보지 못했는데, 물론 다른 행성의 개체들 중에서는 피부가 다른 색을 띠고 있거나 온도나 빛의 문제로 다른 특징이 두드러진 존재들도 있죠. 하지만 그것만이 차이는 아니잖아요."
범주화는 곧 '억압'이 될 수 있다.
엘렌 식수의 '차연'이라는 개념이 생각난다. 소쉬르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차이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빛'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어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엘렌 식수는 이러한 차이는 계속해서 지연되기 때문에 그 의미를 특정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빛'이라는 것은 '물질'이며 '전자기파'이다. 그럼 우리는 '물질'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고, '전자기파'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물질'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기파'는 일종의 (실제로는 더 복잡하지만)'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다시 '원자'의 의미를 이해하고, '에너지'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단어는 갈수록 특정하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차연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사랑의 의미도 똑같다. 사실 우리는 "사랑은 이거야"하고 특정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하는 사랑과 내 앞의 그 대상의 사랑의 형태가 같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사랑의 형태에 대한 범주화는 결국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재가 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퀴어는 비정상적인 사랑의 형태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무엇도 '정상'이 될 수 없고, '비정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여기까지가 단지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어찌 보면 거창하게 해석한 것 같지만 이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딱 두 챕터만 골라서 정리했지만, 책 속에는 다양한 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환경문제에 대한 작가님의 고민이 나타난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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